단순히 지붕을 만들고, 비를 피하며 편의를 도모하는 현대식 시장 레노베이션에 회의감을 느낀다. 물론 그 설계를 한 디자이너의 문제가 아님을 잘 안다.
2025 중앙시장 설계공모를 통하여 느낀 점이 꽤 많다. 건축은 단순히 디자이너의 감각과 이상만을 위해 구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번엔 상인회의 의견이 굉장히 중요했는데, 그들에게 있어 '비'라는 건 굉장히 크리티컬한 문제였다.
상인회의 설득이나 민원을 걱정하여 비는 절대 들이치면 안되는 것이다. 여기서 의구심이 들었다. 상인회는 어차피 자기 상가에서 크게 나올 일이 없는데 왜 비를 걱정하는가.
상인과 기업은 철저히 이윤을 추구하는 명료한 집단이다. 그들에게 있어 '비'보다 더 중요한 건 '이윤'이 아니었던가. 난 철저한 촌사람으로써 시장을 자주 다닌다. 소비자 입장에서 시장은 이제 더 이상 매력적인 장소가 되지 못한다. 가격 경쟁에서 뒤쳐지고 주차나 편의 시스템의 부재, 그리고 무엇보다 컨텐츠가 없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잡스가 한 말이 있다.
'소비자는 자기가 무엇을 진정 원하는 지 모른다'
혁신이란 소비자의 니즈(needs)와 디자이너의 이상 그 중간의 과정에서 나온다.
그러나 잘못된 니즈를 통한 조율에선 혁신이 나올 수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현재 서울에만 369개의 전통시장이 있는데, 신흥시장을 제외하고 활성화가 된 시장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과거엔 백화점엔 창문을 최소화했다. 1층에는 향수와 화장품, 에스컬레이터는 가능한 일방향으로 하여 고객들이 최대한 상품만 보며 바깥의 세상과 격리시키며 상품을 노출화했다.
지금 그런 백화점에 가보면 이용자보다 직원이 더 많다.
백화점도 이젠 컨텐츠와 문화의 공간이 주인공이 된다.
언제까지 전통시장은 과거의 백화점 전성기를 떠올리며 편의성에만 초점을 둘 것인가.
언제부터 비를 피하는 지붕을 만드는 게 전통 시장의 요소가 되었는가.
거의 같은 시기에 나온 통인시장의 현상공모는 결국 당선작 없음으로 결론이 나왔다. 황두진 건축가님의 설계가 우수하고 현재까지 잘 쓰이고 있음에도 왜 현상공모를 진행했는가. 결국 틀에 박힌 관행, 관습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시도가 없는 혁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많은 시장들이 현상설계로 나올 것이다. 만약 이런 선입관들이 바뀌지 않는다면 끊임없이 짓고 부수는 행위를 반복할 것이다.
내가 이번 공모에 참여한 가장 큰 이유는 '디자인 혁신' 그리고 그 혁신을 만들어 줄 우수한 심사위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같이 참여한 경쟁작들의 건축적 아이디어는 너무 우수하고 좋았기 때문에 내가 받은 결과에 대해 아쉬움이 남는 건 아니다. 특히 당선작의 새로운 시도는 가히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제발 상인회들의 의견이 잘 조율되어 준공까지 완성도있는 작품이 나오길 바란다.
약 20여개의 제출 작품 중에서 5개의 안에 든 것에 대해 '시도'의 가치를 알아준 심사위원들께도 감사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