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첫사랑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는가.
나의 경우엔 조금 늦게 그리고 아주 오래 기억에 남아있다.
그리고 그 깊이만큼 나의 감정과 행동들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 사랑을 통해 독서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고, 여행이 선물하는 기적같은 순간들을 깨달았다.
이병률 작가의 글과 시를 읽으며 인도여행을 떠났고, 우리를 둘러싼 공간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었다.
어릴 적 우수한 공간감과 수려한 외관만을 선호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이 여행을 통해 무중의 공간을 느꼈다.
수 년 간 여행을 하며 사람과 공간에 대한 글을 쓰다 보니 책 한 권의 분량이 됐었다.
그만큼 대학교 졸업의 시기는 늦춰졌다. 9년의 긴 공부를 끝내갈 시점, 마지막 수업이 에세이를 읽고 서평을 쓰는 것이었다.
그 시절 김현진 건축가를 처음 만났다. '진심의 공간'이란 책을 쓴 이 건축가는 훗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축가가 되었지만,
지금은 세상을 떠났다.
'나의 생 마지막은 내 안방이었으면 좋겠다'
위 책의 마지막 챕터에서 나온 글이다. 보잘 것 없는 사각형의 방에 내가 좋아하는 액자들과 흔적들이 새겨져 가장 아름다운 공간이 됐고, 인생의 마지막을 그 공간에서 마무리하고 싶다는 내용이다.
나는 김현진 건축가를 만나 내 이야기를 전했다.
살림이 어려워 어머니의 식당에서 살았던 이야기.
손님이 한 차례 지나고 나면 테이블을 치우고 이부자리를 펴 잠이 들었던 이야기.
항상 아버지는 밤 늦게 들어왔는데, 이해가 안됐다는 이야기 등.
그럼에도 그 작은 공간엔 어머니가 손수 짜신 조각보들이 벽에 걸려 있었고, 늦게 들어오는 아버지의 방 한 켠엔 손님용 테이블이 치워져 있었던 이야기.
사랑이야기.
눈에서 눈물이 나기 시작하자 김현진 건축가님의 눈에서도 눈물이 같이 흘렀다.
졸업 후 아이러니하게 나는 한국에서 화려한 건축으로 유명한 곳으로 취직을 했다. 화려함을 알아야 그만큼 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약 7년 서울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하고 내 이름으로 건축사사무소를 오픈했다.
도연명 시인의 '심옹슬지이안' ; 발 뻗을 수 있는 작지만 편안한 공간이 최고더라. 라는 뜻에서 따온 이안이라는 이름으로..
이렇게 공간이안 건축사사무소가 시작했다.
여전히 가장 아름다운 공간에 대해 명확히 정의를 하지 못하지만, 그 과정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시'와 같은 공간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노련한 작가의 시집을 보고 있으면 그날의 감정에 따라 다가오는 글의 온도가 다르다.
같은 글이지만 슬플 때도, 기쁠 때도, 분노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 시는 묵묵히 같은 메시지를 던진다.
그런 공간이 있다면 정말 아름답지 않을까.
당신의 가장 아름다운 공간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