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 :
주요 구조가 기둥∙보 및 한식지붕틀로 된 목구조로서 우리나라 전통양식이 반영된 건축물 및 그 부속건축물을 말한다.
_한옥 등 건축자산의 진흥에 관한 법률
한옥은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그리 오래된 말이 아니다.
개항 이후 서양의 근대 건축양식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새로운 건축양식과 대비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신조어였다.
즉 서양 건축이 들어오기 전에는 모든 집이 한옥이었다. 강원도의 너와집도 한옥이고, 제주도의 초가집도 한옥이다.
그러나 한옥의 정의에 따르면 강원도나 제주도의 집은 한옥이 아니다.
강한 바람을 막기 위해 돌과 진흙으로 주요 구조부를 가렸기 때문이고, 태백산맥의 강한 비바람을 견디기 위해 돌조각으로 지붕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한옥은 조선시대 양반집의 가장 보편적인 건축물을 말한다.
경주란 역사적인 도시에서 건축을 할 때 가장 답답한 일 중 하나는 '한옥 심의'이다.
법에는 규정되어 있지 않은 항목들이 심의 위원들의 입맛대로 한옥과 비한옥을 나눈다.
지붕의 각도, 주춧돌의 크기, 기단의 유무, 창문의 형태 등 그들이 원하는 그림에 맞춰 도면을 그려야 한다.
한지를 썼던 과거시대, 종이란 특징 때문에 문살을 만들고 심미성을 부여하기 위해 다양한 패턴을 만들었다. 과연 조상들의 시대에 대량의 유리가 생산될 수 있었다면 문살은 필연적인 한옥의 디자인 중 하나가 됐을까?
과거의 디자인이나 역사성 그리고 정체성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일본을 여행하다 보면 다양한 목조 건축물이 눈에 띈다.
일본의 과거를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대지진을 비롯하여 온 도시가 불길에 휩쌓이기도 하고 쓰나미로 해안가의 집들이 무너졌다. 전쟁으로 인한 네이팜탄은 금각사의 소설에서 설명하듯 며칠의 지옥을 선사하기도 했다.
그러니 일본의 건축은 끊임없이 진화할 수 있었다. 같은 목조 건축이지만 지진을 대비하여 부자재가 추가되기도 하고 부속품들은 지금까지도 변화하고 있다.
그들은 전통을 버린 것이 아니라, 전통을 계승하며 미래 세대까지 연결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 돌아와 한국.
국가에선 아예 '한옥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버렸다.
그러곤 '한옥은 이렇게 되어야만 해'를 강조한다.
아마 100년 뒤 자손들이 한옥을 본다면, 현재 우리의 역사 속에 한옥은 그저 조선시대 집과 차이가 없다고 느낄 것이다. (오히려 퇴화했다.)
이대로라면 한옥의 맥은 끊길 것이다.
한옥의 가장 큰 가치는 Vernacular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풍토와 지역적 상황을 고려한 최적 그리고 최소한의 디자인이 바로 그것이다.
같은 목조를 써도 중국과 일본 그리고 동남아의 국가들 모두 형태와 구조의 결합방식이 다르다.
다양한 아시아권의 목조 전통주택 중 한옥은 사실 현대적으로 좋은 구조 결합방식은 아니다. 한옥 지붕을 만드는 작업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마무시한 양의 흙을 올리고 5kg정도의 전통기와를 수백 수천 장을 올린다. 즉 아주 무거운 하중으로 집을 꾹 누르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지붕의 하중이 한옥에 비해 50%도 되지 않는다. )
지붕의 하중이 무겁기에 집을 구성하는 부재들의 크기도 커진다. 큰 부재는 이제 한국에서 생산되지 않기에 수입산에 의존하게 된다.
지붕의 하중을 낮추면 되지 않을까? 하중을 낮추니 이젠 횡력에 약해진다. 대부분 오래된 한옥이 비틀리면서 무너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통식 한옥의 기준에 금속으로 만든 기와도 포함되나, 지붕 하중이 낮아지기 때문에 횡력에 저항하기 위해 여전히 부재를 크게 만든다. )
결과적으로 지금의 한옥은 과거와 완벽히 같은 구조방식이지만 내진설계를 충족하기 위해 모든 부재들이 커지는 상황이다.
부재들이 커지니 과거의 한옥과 비교했을 때 건물이 둔해보이기도 한다.
우리 조상들이 썼던 한옥의 부재를 가지고 집을 짓고, 안전을 위한 내진은 현대의 강철와이어를 통해 보강하는 방법도 있겠지. 그러나 지금 이러한 방식은 모두 한옥이 아니기에 심의나 허가에서 통과하지 못한다.
동료 건축가가 한 말이 충격적이다. 그런 시도를 하고 싶으면 한옥을 지어도 되지 않는 곳에서 하고, 그냥 현실을 직시하라는 말이었다.
여전히 한옥의 건설비용은 일반 건물과 비교했을 때 1.5배 비싸기에 현실적인 조언은 되지 못했다.
내가 던지고 싶은 메시지는 명료하다.
어느정도의 자유가 생겨야 우리 고유의 건축물이 미래의 시대까지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도들이 너무 엇나가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게 전문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자유가 있으면 어긋나는 사람이 생기기에 부작용을 애초에 없애려고 하는 행동은 응당 건축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미성년자의 정서적 영향을 위해 일부 게임을 아예 금지시켜 큰 파장이 일어난 적도 있지 않은가. (마인크래프트가 금지된 국가는 러시아, 이집트 그리고 한국이었다. 성범죄를 막기 위해 성인 사이트를 모두 금지 시킨다거나..)
한국에서 자유와 'Ism'이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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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의 건축술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불국사와 최초의 인공석굴인 석굴암을 만들었다. 통일신라 시대의 해인사는 현대의 기술을 뛰어넘는 보존술을 가지고 있다.
이런 우리 선조의 건축술을 존경하고 보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의도와는 다르게 겉보기에만 치중하여 가끔 본질을 잃어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