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무중의 공간
좀처럼 잠이 들지 않는 밤이었다. 아마도 조금 전에 마셨던 맥주의 취기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을 심연에서 끌어냈던 것이 이유겠지. 나의 오랜 경험으로, 이 고질병 같은 현상은 분명 오늘 새벽을 다 뺏어 갈 것이 분명했다. 냉장고에서 맥주 한 병을 더 꺼냈다. 같은 방에는 다른 여행객들이 많았으므로 옥상만이 나의 음주를 책임져 줄 유일한 공간이었다.
옥상으로 가는 문이 없어 야외의 더운 공기가 조금씩 내부로 스며들었고, 맥주병 표면의 이슬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옥상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물탱크와 빨랫감 몇 개 가로등 불빛과 달빛만이 존재했다. 아니다 무언가 더 있다.
나의 발걸음에 놀랐는지 어둠 속에서 무언가 움직였다. 자세히 보니 낮 동안 호스텔의 손님의 짐을 들어주던 ‘로한’이다. 그리고 그의 옆에 누워있던 친구는 점심과 저녁에 달걀요리를 하던 친구. 그 외 몇 명이 물탱크 아래에서 누워있었다. 맥주병을 이미 따버렸기에 조용히 한 병만 마시고 돌아가겠다며 허락을 구했다. 사실 인도라는 나라에선 집이 없다는 건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다만 낮에 봤던 깔끔한 이미지의 로한과는 전혀 달랐던 모습에 충격을 받았을 뿐.
눈이 어둠에 적응이 되기 시작하고, 무중의 세계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나름의 부엌이 있었고, 식사를 할 수 있는 탁자와 의자까지. 그리고 표식 같은 것은 없지만 각자의 자는 공간이 있었다. 나는 물탱크 아래의 공간은 아마 가장 힘이 센 사람의 자리일 것이라 어림짐작을 하며 다 식어버린 맥주를 꼴짝 마셨다.
사람은 시간과 공간(空間)에 거주하는 유일한 존재라고 한다. 달빛과 물탱크에 기대어 자는 그들을 보면서 ‘인간은 이미 우주의 세계에 들어갔다’라는 어구가 생각난 것은, 아마 그들의 공간이 우주로 보였기 때문이 아닐까. 확실한 건, 에어컨은 있지만 창문 하나 없는 지금의 내 공간보다는 훨씬 멋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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