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그녀는 격앙된 채, 장을 보고 온 내게 고함을 질러댔다. 두 손엔 검은 비닐봉지가 쥐어져 있었고, 봉지 사이로 피자냄새가 서서히 올라왔다. 그리고 매콤한 커리 냄새가 부엌에서부터 나의 코앞까지 지나갔다. 처음 보는 아멤의 굳어있는 표정과 물기가 마르지도 않은 채 풀어헤쳐진 머리는 단단히 화가 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했다. 아멤은 새벽 5시면 항상 대학교 체육센터에서 수영을 하고, 8시에는 집으로 돌아와 아침을 먹었다. 그러고는 어둘녁까지 2층에서 일을 했고, 7시에는 몸을 씻고 머리를 말렸다. 며칠 간 지켜본 그녀는 단 1분도 시간을 어긴 적이 없었다. 8시가 다 되어 가는데도 머리가 젖어있다는 것은 한 시간 가량 내가 머무는 방문 앞에서 기다렸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의 머릿속에서는 오늘 하루 동안의 행적을 따라갔다. 외출 할 때, 수도꼭지는 확실히 잠갔고, 에어컨과 전등 또한 체크를 했다. 그녀가 내게 화내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왜 아침을 안 먹어요? 기껏 차려서 기다렸잖아요.’
아멤은 이유를 말하고 나선 더욱 격해진 감정을 표출했다. 아침을 차리고 수십 번 방문을 두드렸단다. 아무리 내가 그녀의 집에 잠깐 머무는 게스트라지만 얘기를 듣고만 있자니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그리고 아침에 관한 얘기라면 나도 할 말이 많았다.
그제 밤에 아멤은 내 방을 노크했고, 다음 날 아침을 언제 먹겠냐고 물었다. 오늘 잠도 설칠게 분명했기에, 8시는 너무 일렀고, 10시가 적당한 것 같다고 얘기했다. 그녀의 시간개념에 대해선 너무나도 잘 알았기에 10시가 되기 30분 전부터 모든 준비를 끝내고 부엌에 앉아 기다렸다.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조용한 주방. 아멤의 방은 열려있었고 힐끗 본 그녀의 방에서, 아멤은 노트북을 들고 무언가 열중하는 모습이었다. 약속한 시간이 다 되어갔고, 나는 그녀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여전히 조용한 주방을 나간 뒤, 푸른 공원 길을 걸었고, 커피숍을 들려 샌드위치를 사서 먹었다.
그녀의 말은 조금 달랐다. 10시부터 음식을 준비했고, 한 시간 가량 기다렸다는 것. 그리고 왜 자꾸 방문을 걸어 잠그는지 모르겠다며 내게 말했다. 자초지명을 설명하지 않으면 그녀와 남은 며칠이 힘들어질 게 보였다. 그녀를 의자에 앉히고 나의 이야기를 천천히 들려주었다. 삼일 전 강도를 만나 모든 것을 잃을 뻔 했고, 공항에서는 크게 사기를 당해 지금은 경계가 조금 심할 수도 있다는 말과 오늘 아침에는 서로 부족한 영어에서 비롯한 오해였다는 말을 전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반쯤 열린 방문을 느긋이 응시했다.
‘이 집에 찾아오는 여행객의 여행담을 듣고 싶었어요. 지금 그게 저의 유일한 낙이에요.’
항상 방문이 열려있는 이유를 알게 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루에도 몇 명씩이나 만나는 나완 다르게 한 달에 한 번 사람을 만나는 그녀를 어떻게 내가 감히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잠이 드는 순간까지도 얼굴은 붉은 빛을 띄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한 일은 문을 반쯤 열어 놓는 것이었다.
여행을 하다가, 호텔이 아닌 ‘집’에 머물게 된다면, 당신의 이야기가 흘러 갈 수 있게 하루 두 번 쯤은 문을 열고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