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태도
‘아무것도 없지만 모든 것이 있다.’
일 년 전 아는 지인에게 검은색 노트 한 권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검은 캔버스의 표지 앞에는 ‘디자인의 디자인’이라고 적혀져 있고, 첫 장엔 위의 말이 적혀져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평범한 노트인 줄 알고 메모장용도로 쓰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이 노트가 꽤나 구하기 힘든 것이라는 군요. 아마 제가 소유하고 있는 것 중에 ‘한정판’이라는 단어가 붙은 것은 이 노트 밖에 없을 겁니다.
이 노트를 다시 펼쳐본 것은 얼마 전입니다. 인도여행을 갔다 와서 새로운 기분을 내기위해 서재를 정리하다가 발견했습니다. 반갑던 표지를 넘기니 별별 얘기가 다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편지 제목을 쓰다가 지운 흔적, 영화를 보고 감명 받았던 명언, 설계 디자인을 하던 흔적까지 말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과정이 아닌 결과만 보입니다. 아마 이 노트에 대한 태도가 바뀐 모양입니다. 그러니 재미가 없는 거죠. 그러니 몇 장 채우다 서재 구석으로 간 거겠죠.
요새 들어, SNS에는 자주 인테리어 소품에 관한 것들이 눈에 많이 보입니다. 디자인을 하는 제가 봐도 예쁩니다. 그러나 한 편으론 당신의 공간이 그저 결과만 채워지기에 바쁜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공간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이름을 부르는 과정 속에서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니까요.
그녀는 빛을 좋아하기 때문에 항상 창문 앞에 책상을 두곤 했어요. 그리고 새벽에 잠들고 늦게 일어나는 버릇이 있었기에 침대의 위치는 어두울수록 좋았습니다. 숲에 살고 싶었기에 식물하나 방에 두는 건 아무 일도 아니었죠. 그녀는 자신의 방엔 아무것도 없기에, 보여줄 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문득 들여다 본 그녀의 공간은 그녀만큼이나 아름다웠습니다. 아무것도 없지만 모든 것이 보이는 것은 그녀의 공간이 진심이었기 때문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