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대부분 공간 속에서 살아가고, 또 그 공간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한다. 당신은 작년 덜컹거리는 문고리를 교체했고, 흔들리는 책상다리 한 쪽 아래에 신문지를 여러 번 접어 끼워 넣었다. 오롯한 당신의 공간. 모든 문을 여는 방향은 오른쪽, 아니면 왼쪽이라지만, 당신의 공간에서는 그 확률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이렇게 당신은 모든 공간에 당신의 이름을 새겨 넣어야 하는 성격이다. 기성품의 가구를 사더라도 꼭 성한 몸을 베어내어 불완전의 상태를 만든다. 그래서 당신은 오롯이 당신만의 부엌을 너무나 가지고 싶어 한다. 엄마가 정성스레 담아주신 김치의 향이 베인 냉장고, 참기름 냄새가 진동하는 서랍장, 물기가 마를 틈이 없는 싱크대, 그리고 식탁.
힘든 가정 형편에 당신의 부모님은 자식 둘을 꽤 잘 키우셨다. 그리고 부모님이 갑자기 식당을 하신다고 멀쩡한 부엌을 없애버린 일을 보고 당신도 꽤 잘 참았다. 배가 고플 때면 항상 끓여먹던 라면은 그 이후 직접 끓여 본 적이 없다. 부엌이 아닌, 낯설게 변한 주방의 가스레인지는 어떻게 키는지 작동법도 몰랐고, 갑자기 커져버린 후라이팬과 냄비는 당신을 당황스럽게 했다. 맨발로 다니던 부엌인데, 이제는 신발을 신고 다녀야 했다. 그래서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작가를 고를 때, 글의 제목을 보고 골랐는지도 모른다. (키친의 저자 요시모토 바나나였다)
부엌에는 삶의 진동하는 냄새가 있다. 예 말에 이웃의 수저 개수도 안다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당신의 오랜 친구 집에 갔다가 문득 바라본 부엌에선 3개 밖에 없는 테이블 의자가 불현듯 당신의 마음을 울렁였다. 분명 수저의 개수는 더 많았는데 말이다. 그 날은 예기치 못한 손님의 초대로 의자의 개수가 부족했다. 그리고 친구의 엄마는 그 날 하루 종일 웃으셨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부엌에는 진한 냄새가 있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다.
부엌에는 취향의 향이 있다. 볶음 요리를 좋아하는 당신은 후라이팬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햇살이 비치는 거실을 바라보며 요리를 하는 것을 꿈꿔왔기에, 아일랜드 식 싱크대를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신은 취향이 진하게 배인 공간은 정말 아름다울 것이다 하며, 그리고 그런 공간이 있다면 꼭 하루는 거기서 잠을 자겠다 하며 잠이 들곤 했다.
언제 당신의 부엌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당신은 부엌에서 음식 냄새보다 사람냄새가 더 배어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