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고 아침을 시작하는 작은 방,
매일 속옷 빨래가 널려있는 203호,
항상 창가 쪽 자리가 비어있는 403번 버스,
그저 스쳐지나 갈 수도 있는 장소지만, 매일의 공간이자 세상 유일무이한 공간이다.
그리고 당신이 항상 스쳐가듯 공간도 당신의 향기를 담았다가 잠시 스쳐가듯 흘린다.
서재에 남은 당신의 향기 속에는 어디든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있고,
항상 반대편 이어폰을 빼놓고 앉은 버스 창가자리의 향기 속엔 만남의 설렘이 있다.
203호의 베란다에는 뜨거운 사랑의 냄새가 있겠지.
‘공간’은 필요로 의해 만들어진다. 당신은 볶음요리를 좋아하기 때문에 냄비보단 후라이팬이 많고, 깔끔한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책상은 항상 정돈되어 있다.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탓에 차라리 수납장을 샀다. 비싼 가구가 많아서, 넓은 공간이 있어서 좋은 공간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공간은 적어도 둘 다 아니었다.
앞산에서 마음에 드는 나무를 찾아 그 앞에 돌 하나 얹어 놓아도 ‘공간’이 된다.
공간에는 한 여름의 뜨거운 사랑이 있고, 여행의 설렘이 있고, 사람을 기다리는 묘한 기대감 같은 것이 있다.
책 01
이상하게 전 서점을 자주 갔지 말입니다. 책도 안 좋아하는데, 그래서 전 제가 종이냄새를 좋아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한 동안은 제가 열심히 책을 모았지 말입니다. 옷도 시즌 별로 사지 않는 저인데, 책은 꼭 계절마다 샀습니다. 책 종류에 따라 다른 냄새가 날까 종류별로도 샀었지 말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모이고 모여도 제가 좋아하는 냄새가 나지 않는 겁니다. 제가 아는 경주의 작은 책방은 백 권으로도 충분히 제가 좋아하는 냄새가 났는데 말입니다. 이유가 뭘까 책방에서 하루 종일 앉아 냄새의 근원을 찾아보려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도무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이 책방은 책 외엔 특별한 장치가 없는 겁니다. 그렇게 여섯 시간정도를 앉아 있었지 말입니다. 와, 근데 딱 여섯 시간이 지나니깐 제가 어떤 냄새를 좋아 하는지 알겠는 겁니다. 제가 좋아하던 냄새는 말입니다. 바로 사람냄새였지 말입니다.
이유 말입니까?
전 여섯 시간동안 책은 안보고 책 사러온 사람만 봤지 말입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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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02
혼자 인 것을 즐기지만 항상 데리고 다니는 녀석이 있다면 바로 ‘책’이다.
이녀석은 가끔 나를 울게 만들거나, 히말라야에 대려다 주기도 하고, 사막 한가운데 떨어뜨려 놓기도 한다. 그러곤 항상 누군가를 만나게 한다.
00 잊는 방법
이별의 기억은 지우려고 노력 할수록 더 깊게 박힐 뿐이에요. 결국 손을 못 쓸 정도로 박혀 병원에 가야 할 거에요. 그 기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세요. 나에게 아팠고 슬펐던 사랑을 준 사람을 원망하지 마세요. 고마워해야죠. 어찌됐던 사랑이니까요.